위빠사나 명상은 우선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 판단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부릅니다. 이같은 알아차림을 우리는 사띠(sati)라고도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아차림을 해버리게 되면 당시 떠올랐던 생각이나 감정은 곧바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만약 알아차림의 대상을 놓쳐버리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의 호흡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리고 호흡의 변화를 다시한번 알아차림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면 다시 그 생각과 감정을 아무런 판단없이 순간적으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렇게 반복하게 되면 어떠한 일상의 현상에 대해 습관적으로 대응하던 우리 몸의 감각회로는 약화되고, 하나의 현상을 그저 아무런 감정이나 판단없이 바라보는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 지게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행동 A를 잘못된 행동이라고 판단하고 그 행동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화"부터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화"가 나면 혈압도 오르고, 심장박동도 빨리지며, 그와같은 현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연쇄적인 반응 즉, 과거의 습관적인 반응들이 함께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화"는 더욱 증폭되어 이전의 경험이 더해져 더욱 크게 발산되고, 또한 우리의 의식속에서 이 화에 대해서 더 강한 습관의 회로를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이같은 반응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우리 뇌의 A 행동에 대한 회로는 점점 더 화로써 강화되어 우리에게 나쁜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A라는 행동을 보게되면 먼저 화부터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똑같은 행동 A에 대해 위빠사나 수행법을 통해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선 아무런 판단없이 "화가 나는 마음"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화"는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화를 사라지게 만들면 그 또한 우리에게 습관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를 어떻게 사라지게 만들까요? 화는 우리가 애써 사라지게 만들지 않아도 스스로가 자멸하게 됩니다. 처음 화가 발생했을때 우리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화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화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화를 놓아버리게 되고 다른 생각이나 사물로 생각이나 감정이 옮겨지게 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건 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뇌에 전달하여, 이미 존재하고 있던 화라는 회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회로는 이전보다 더 담금질 되고 강화되어 우리의 신체기관에 더 크게 화를 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프로세스가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덧 습관이 되어 우리의 화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커져만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화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곧 우리 스스로에게 제 3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은 화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을 놓아버리고 다른 생각이나 감정 등의 대상으로 관점을 옮겨 버리게 됩니다. 쉽게 설명하면 알아차린다의 의미는 제 3자처럼 "그냥 아무런 판단없이 바라본다." 입니다. 우리는 그냥 아무 판단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하게 되면 그 대상에게서 곧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재미가 없으니까 곧 다른 대상에게로 생각이나 시선을 바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하여 옮겨진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우리가 또다시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전에 붙잡고 있던것을 다시 놓아버리고 또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대상을 옮기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아차림을 반복하는 순간 우리는 가지고 있던 이전의 것은 놓게 되며, 관점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하게 되면 여러번의 관점이 옮겨지면서 본래의 화는 스스로 자멸해 버린다는 논리입니다. 이같은 위빠사나 수행이 우리에게 습관이 되면 살면서 A의 행동을 또다시 보게 되더라도 화를 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화를 내도록 만드는 회로는 약화시키고 A의 행동을 그냥 아무런 감정없이 바라볼 수 있는 회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그것이 우리의 습관이 되고 흔히 말하는 우리의 인성 즉, 우리의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아(自我)가 형성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아(自我) 역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을 반복하는 무상(無常)것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위빠사나의 프로세스는 이처럼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논리에 부합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도 고정된 실체가 없이 끊임없이 생멸하고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 생멸변화하는 과정속에서 화를 자멸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인 것입니다. 또한 화가 변화하는 과정, 즉 화를 자멸하게 만드는 과정은 어찌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緣起)와도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시말해 악습은 버리고 새로운 좋은 습관을 만들어 내는게 바로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계속하게 되면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는 또다른 의식인 제 3의 눈도 발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이고 반사적으로 우리의 나쁜 반응을 멈추기 위해 밟아야 하는 브레이크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알아차림을 지속해서 수행하게 되면 하나의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그자리에서 다음 생각이 생겨나는 과정도 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제3의 눈, 즉 영안(靈眼)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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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위빠사나
헬로 위빠사나는 일상속의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을 목표로 합니다.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스려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완화시키는 마음챙김을 공부합니다. 헬로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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