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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팔정도(中道)

중도(中道)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팔정도(八正道)

by 템플스토리 2023. 5. 17.

팔정도
<출처 : https://unsplash.com/>

 

팔정도는 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방법이라고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팔정도(八正道)에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등이 있습니다. 사성제가 카르마를 관리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청정한 상태에 이르기 위한 수행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면 팔정도는 이후 열반에 이르기 위해 정진해야하는 다르마의 수행법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 논리적 관점으로 볼때 먼저 사성제로 카르마를 잘 관리하여 나쁜 업보를 소멸시키고 청정한 상태에 이른 다음 팔정도를 통해 다르마를 수행하면 누구나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게 타당해 보입니다. 그리하여 사성제는 카르마와 관계되어 있고 윤회를 반복하는 과정(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섭리)속에서 이를 깨닫고 우리를 청정하게 만드는 수행 방법인 것이고, 팔정도는 다르마와 관련이 있고 끝없는 윤회의 반복을 멈추고 고통이 없는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수행 방법과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사성제
<출처 : https://unsplash.com/>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성제는 인간은 왜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고통의 종류와 원인은 무엇인지, 또한 고통을 없애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고통이 없는 청정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 다시말해 업장을 소멸하고 좋은 카르마를 형성하게 되는지에 대한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섭리가 담겨 있는 법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팔정도는 앞선 사성제로 말미암아 청정한 카르마를 형성했다 하더라도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속에서 벗어날수는 없기 때문에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 즉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팔정도는 실천적 수행을 강조하는 다르마라는 것입니다. 

 

십이연기
<출처 : https://unsplash.com/>

 

먼저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 즉 바른 판단을 뜻하며, 지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이며, 올바른 사고와 바른 의지를 뜻하기도 합니다. 정어(正語)는 바른 말을 뜻합니다. 다시말해 올바른 언어적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이나 나쁜말, 이간질이나 욕설 등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라는 뜻입니다. 정업(正業)은 부도덕한 일이나 비윤리적인 일을 업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명(正命)은 바른 생활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올바르게 생활하는것을 얘기합니다. 이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생활하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정진(正精進)은 올바른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없애려 노력하고 악한 업보를 없애려 노력하고 선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고 선한 업보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등의 바른 노력에 해당하는 의미입니다. 정념(正念)은 항상 관념을 바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삿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개념을 갖추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정(正定)은 바른것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정정취(正定聚)의 줄임말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바르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져 온 팔정도에 대한 해설이었습니다.

 

중도
<출처 : https://unsplash.com/>


이처럼 팔정도는 모두 바른것들에 대한 우리의 실천수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른것인지에 대한 잣대와 기준은 어찌 되는 걸까요? 자, 이번에는 그 기준을 먼저 세우고 다시 팔정도에 대한 해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석가모님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을 혹자는  중도(中道)라고 하고 혹자는 십이연기(十二緣起)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서로 다른것이 아니고 십이연기를 바라보는 관점, 즉 기준이 바로 중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도란 십이연기와 하나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바라보는 기준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다시말해 십이연기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것이 사성제이고, 고, 집, 멸, 도의 과정에 이르면서 최종적으로 우리를 열반에 들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팔정도의 수행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팔정도의 기준은 바로 중도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중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실천적 수행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팔정도의 '바른~' 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는 바로 '중도적 관점에서'라는 의미라는 말입니다.

 

초전법륜
<출처 : https://unsplash.com/>

 

중도적 관점이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많지도 적지도 않으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옳지도 그르지도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위치에서 행하는 것들이 바른이라는 뜻으로 해석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중도적 관점에서의 바른(正)이라는 말입니다. 중도적 관점을 잣대와 기준으로 삼아 위의 팔정도를 다시 풀이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정견(正見)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견해와 판단을 뜻하며, 정사유(正思惟)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생각이며, 정어(正語)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말을 의미 합니다. 정명(正命)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생활을 뜻하며, 정정진(正精進)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노력을 의미 합니다. 정념(正念)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관념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정정(正定)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몰입과 집중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출처 : https://unsplash.com/>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것은 "중도(中道)"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이를 사람들이 알기 쉽게 만든것이 바로 사성제(四聖諦)가 됩니다. 사성제는 인간의 고통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카르마(Karma)를 잘 관리하여 청정한 상태에 이를 수 있는 방법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윤회(輪廻)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히 고통이 없는 열반(Nirvana)의 세계에 드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그 방법이 바로 실천적 수행법인 팔정도(八正道)라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다르마(Darma)라 부릅니다. 따라서 팔정도의 '바른'이란 옳고 그름중 옳은것 한쪽으로 치우치는 개념이 아닌 중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으로 해석하는게 옳다는 것입니다.

 

치우치지 않음
<출처 : https://unsplash.com/>

 

다시말해 우리가 선업만을 지으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중도에서 어긋나는 논리입니다. 바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살아가는게 만인을 위해 좋기는 하겠지만 불교적 관점에서는 인간으로써 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소멸하는데 그 목적과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말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팔정도를 중도의 기준에서 수행하고 지키게 된다면 고통은 멈추게 되고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이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모든것에서 중심을 지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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